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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일(千明一) 선생
1938년 12월 26일 경북 문경출생
- 부산불교경전연구원 원장
- 전 부산국군 통합병원 객원법사
- 고대전통침구학자
- 태광 티브로드 방송 "산성 할아버지의 신사고 한문이야기
54회 출연"
- 구미 새로넷 방송 및 월드이벤트TV "우리 민속 이야기" 출연 중 입니다
우리에게 산성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천명일 선생님께서는 38년 문경에서 출생하셨다. 한학자이며 불교학자 그리고 고전 침구학자인 당신의 해박함 에 많은 사람들이 우선 기가 질려 버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신의 그 다지 길지 않은 정규교육의 연역에 또 한번 놀라고 만다. 당신이 한학자로 먼 저 알려 졌지만 당신은 늘 말씀에 3세 살 때 어머님의 등에 업혀 6살 모친께서 세상을 등 질 때까지 3년간 학방에 다닌 것과 당시 소학교를 나와 상주 에 있는 남산중학교를 2학년 1학기 까지 다닌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학교에서 시험기간에 시험을 치기도 전에 당신의 눈엔 선생님들께서 문제 출제도 하지 않았건만 그 출제될 문제와 답이 훤히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누구에게서 특별히 배운 바도 없는데 자연히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려서 선생님들이 그 재능을 아껴 예능쪽으로 나갈 것을 권했으나 이런 예능은 잠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뿐 정작 인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크게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 이런 까닭에 학교에서 배울려 해도 누가 더 가려쳐 줄 수도 배울 수도 없어 그냥 집에서 농사나 짓겠다고 결심하고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그리고 부친 앞에서 모두 이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자퇴를 하셨다. 그러데 어릴적부터 유달리 병약한 체질이었기에 19세에 큰 병이들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부친께서 가는 동안까지라도 편히 지내라고 요 양차 상주 남장사에 맞겨졌었고 당신은 그 당시까지 관세음보살이라는 말도 몰랄 그냥 난 "관셈보살" 인줄 알았어라고 하셨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을 때 그 절법당에서 홀로 기도 중 갑자기 비로자나 부처님이 법상에서 걸어내려와 머리를 만져주시고 몸에 있던 고질병이 낫고 다음 아미타전의 아미타 부처님으로부터 불지견을 빌어 시방 법계에 두루하신 <청정법신 노사나불>과 <원만보신 노사나불>, 그리고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즉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의 뜻과 이치를 눈으로 직접보고 세부처님이 일체일을 알고 화엄법계장이 어떻게 이뤄지며 부처님의 묘법이 무엇인지 알게되셨다. 누가 보면 이러한 인연이 그냥 굴러들어온 행운이라 하겠으나, 이는 역시 누겁의 전생 수만생을 수행과 공덕의 결과로 이생에 이러한 현묘지도를 얻게된 것 이라 한다. 그 후 당신 신변에 이상한 이적과 기적이 일어났는데 예를 들어 어떤이는 손만데면 아픈 사람의 병이 낫고 못다말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이것이에 빠지거나 집착하게 되면 나의 내면에 있는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고 외도의 길이라 여겨 오히려 과학적으로 어떻게 환자가 낫는지에 대한 의문 에서 출발하여 60년대 5.16 직전 대구지역에 침술의 대가 이셨던 의암 이중영 선생이 계셨던 관인 침구학원에서 가르침를 받아 침구과정을 이수 하셨다. 다시 70년대 초 부산으로 생활터전을 옮기시면서 이후 반평생을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사람과 영적인 초월에 세계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고자 많은 강의와 설법을 전하셨다. 사람들이 크게 착각한 것은 산성할아버지는 그냥 전생의 공덕으로 이생에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는 오류에 젖어 있는데 당신은 시간시간 일 하시던 도중에 틈틈이 책을 읽고 공부하고 책이나 사람에게서 배우지 못하는 분야는 참선을 통한 정신계에서 수 많은 성인과 기인달사들과 교류해 배웠다고 하신다. 예를 들어 하루는 참선에 들어갔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침에 대한 의문에 한 유리같이 투명한 화작보살을 만들 어 사람의 신경 유주를 그 때 훤히 알게 되었고, 그외에도 예수님, 허준선생등과 같은 분들과의 꿈같은 영험등은 우리로써는 받아들이거나 상상하기도 힘든 사실이다. 이후 35년 여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참된 진리의 법을 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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